오직 한 가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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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gust 30, 2018

오직 한 가지 문제

낙태 문제는 찬반의 논란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도, 여성의 도덕성 문제도 아니다. 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란 무엇인가?

선별하여 낙태를 자행하는 것은 방어력이 없는 생명을 죽이는 불공평한 짓이라고 생명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므로 낙태의 논쟁은 오직 한가지 질문으로 귀착한다: 태어나지 못한 아기도 한 인간인가? 만약 그렇다면, 누구의 유익을 위하여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은 심각한 부도덕이며 범죄다. 그것은 고유한 가치가 있는 한 인간을 쓰레기처럼 내어 버리는 행위이다. 반대로, 태어나지 않은 아기란 인간이 아니라면, 낙태라는 것은 내 아픈 이 하나를 뽑아 버리듯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Gregory Koukl 이 지적했듯이, 만약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인간이 아니라면 선별적 낙태란 정당한 것으로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반대로 만약 태어나지 않은 아기라도 그것이 한 인간이라면 낙태가 옳은지 그른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없으며 이는 분명히 불법이다. . (Koukl, Precious Unborn Human Persons, p. 7)

그렇다고 해서 낙태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쉬운 결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낙태를 결정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복잡하며 혹자에게는 어쩌면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당면 문제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 논제를 다루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적 갈등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과연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를 알 수 있을까?

낙태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라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죽은 것은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명을 죽인다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는 ‘과연 그것이 어떤 존재냐?’라는 질문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질문을 전적으로 무시한다. 그들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란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과는 달리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이렇게 보면 분명하다: 누가 선택적 낙태라는 논쟁을 할 때 스스로 물어보라.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나, 다른 어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논쟁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걸음마 배우는 아기와는 달리 온전한 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문제다.

여성은 자신의 사사로운 일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한 여인이 2살 난 아기를 데리고 있다고 하자. 자신이 혼자 있는 침실 안이라고 해서 그 아기를 죽일 수 있는가? 물론 안 된다. 왜 그런가? 그 아기는 이미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죽일 수 없는 것과 같이, 태어나지 않은 아기라도 한 인간이기 때문에 죽일 수 없는 것은 전혀 마찬가지 일이다.

물론 낙태 옹호론자들은 아기를 죽이는 것과 태중의 아기를 낙태하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사과와 오렌지처럼 다르다고 하는데, 그것이 문제다. 태중의 아기는 걸음마 배우는 아기와 다른가? 이 문제를 우리는 적당히 피하여 넘어 갈 수 없다.

그러나 많은 가난한 여성들은 또 한 아기를 낳아 기를 여유가 없다.

사람을 데리고 사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서 죽여 버릴 수 있는가? 대가족이 살다가 생활이 어려워 진다고 가장 어린 아이 셋을 조용히 죽여 버린다면, 그런 짓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낙태옹호론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안되지만, 낙태는 아이를 죽이는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 이것이 문제다: 2살 난 아기를 죽이는 것과 태중의 아이를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다른 일인가? 그러므로 또다시 우리의 논쟁은 ‘태어나지 않은 것’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치 않는 아기를 억지로 낳으라고 여성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

낙태옹호론자들은 태아를 죽이는 것이 때로는 더 인간적이라고 강변하면서,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는 가정에 태어나기를 누가 원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환영받고 원하는 환경을 가질 권리가 있다 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가 환영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으니 그냥 죽여 버려도 될까? 어떤 가정에 원치 않는 아기가 있는데, 아마도 그는 5살이 되면 여러가지에 시달리고 학대 가운데 살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 아이가 장래 어려움을 당할 것이니, 아예 지금 죽여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지만, 우리는 다시 이 문제의 핵심으로 돌아 간다:과연 태아란 무엇인가?

여성에게 장애가 있는 아이를 기르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내 앞에 지능에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는 머리가 둔하고, 말하기도 이해도 다른 아이에 비해 뒤지며,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이상해 보인다. 아이가 이러니 죽여 버린다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낙태 옹호론자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아이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동의하며, 그를 다른 모든 장애인처럼 잘 돌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만약 태어나지 않은 아기라도 지능이 떨어지는 걸음마 아기처럼 한 인간이라면, 그가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죽여야 할까? 이와 같이 낙태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논제는 장애가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모든 여성은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

2살 된 딸을 학대하는 어머니를 보고, 도덕적으로 훈계해야 할까? 물론 그래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비정상적인 학대를 받아서는 안된다.

우리의 문제의 핵심은 도덕성도, 개인적인 것도, 경제 문제도, 육체적 장애도, 아이를 원하느냐 아니냐도 아니요, 오직 한 가지 “태어나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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